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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운

1장 교운1장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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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북소리
댓글 0건 조회 28,238회 작성일 21-06-15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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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께서 어느 날 김형렬에게 가라사대 “서양인 이마두(利瑪竇)가 동양에 와서 지상천국을 세우려 하였으되 오랫동안 뿌리를 박은 유교의 폐습으로 쉽사리 개혁할 수 없어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도다. 다만 천상과 지하의 경계를 개방하여 제각기의 지역을 굳게 지켜 서로 넘나들지 못하던 신명을 서로 왕래케 하고 그가 사후에 동양의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리고 서양에 가서 문운(文運)을 열었느니라. 이로부터 지하신은 천상의 모든 묘법을 본받아 인세에 그것을 베풀었노라. 서양의 모든 문물은 천국의 모형을 본뜬 것이라.” 이르시고 “그 문명은 물질에 치우쳐서 도리어 인류의 교만을 조장하고 마침내 천리를 흔들고 자연을 정복하려는 데서 모든 죄악을 끊임없이 저질러 신도의 권위를 떨어뜨렸으므로 천도와 인사의 상도가 어겨지고 삼계가 혼란하여 도의 근원이 끊어지게 되니 원시의 모든 신성과 불과 보살이 회집하여 인류와 신명계의 이 겁액을 구천에 하소연하므로 내가 서양(西洋) 대법국(大法國) 천계탑(天啓塔)에 내려와 천하를 대순(大巡)하다가 이 동토(東土)에 그쳐 모악산(母岳山) 금산사(金山寺) 삼층전(三層殿) 미륵금불(彌勒金佛)에 이르러 三十년을 지내다가 최제우(崔濟愚)에게 제세대도(濟世大道)를 계시하였으되 제우가 능히 유교의 전헌을 넘어 대도의 참 뜻을 밝히지 못하므로 갑자년(甲子年)에 드디어 천명과 신교(神敎)를 거두고 신미년(辛未年)에 강세하였노라”고 말씀하셨도다.



<주해>

​최제우(崔濟愚, 1824년 음력 10월 28일)는 본관이 경주(慶州)이고, 초명은 복술(福述)·제선(濟宣)이며, 자는 성묵(性默)이고, 호는 수운(水雲)이다. 아버지는 옥(鋈)이며, 어머니는 한씨(韓氏)이다. 세상인심의 각박함과 어지러움이 바로 천명(天命)을 돌보지 않기 때문에 나타난 것을 깨닫고 천명을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하였다. 1856년 경남 양산에 있는 천성산(千聖山) 내원암(內院庵)에서 도를 닦기 시작하여 1857년에 천성산(千聖山) 적멸굴(寂滅窟)에서 49일간 기도를 드리고 정성을 드렸다. 1859년에 가족들을 데리고 고향인 경주에 돌아와 이름을 제우(濟愚)로 고치고, 구미산(龜尾山) 용담정(龍潭亭)에서 억울한 민생과 병든 나라를 구하고자 하늘에 기도하였다. 그러던 중 경신년(庚申年, 1860) 4월 5일에 하늘로부터 천강(天降)을 받게 되는데,『동경대전』의 "포덕가"에 그 내용이 실려가 있다. 


뜻밖에도 마음이 선뜩해지고 몸이 떨려서 무슨 병인지 집증(執證)할 수 없고 말로 형상하기도 어려울 즈음에 어떤 신선(神仙)의 말씀이 있어서 문득 귀에 들리므로 놀라 캐어물은 즉 대답하시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 세상 사람들이 나를 상제(上帝)라 이르거늘 너는 상제를 알지 못하느냐.”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시기를 “내 또한 공이 없으므로 너를 세상에 내어 사람에게 이 법을 가르치게 하노니 의심하지 말고 의심하지 말라.” 또 묻기를 “그러면 서도(西道)로써 사람을 가르치리이까” 대답하시기를 “그렇지 아니하다. 나에게 영부(靈符)가 있으니 그 이름은 선약(仙藥)이요, 그 형상은 태극(太極)이요, 또 궁궁(弓弓)이니 나의 영부를 받아 사람을 질병에서 건지고 나의 주문(呪文)을 받아 사람을 가르쳐서 나를 위하게 하면 너도 또한 장생하여 덕을 천하에 펴리라.” 하였다. 

- 동경대전 포덕가 -

이 때 그의 나이가 37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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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로부터 계시를 받은 최제우는 많은 문답과 시험을 거쳐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다(吾心則汝心)’라는 결정적 계시에 홀연히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을 자신 속에 모시고 있다’는 시천주(侍天主)의 원리를 깨닫고 주문(呪文)을 적어내어 포교를 시작하였다. 당시 국가의 기강과 사회도덕이 모두 타락하여 국가는 외세에 대응할 힘이 없었고, 서민들은 각종 차별주의적인 제도에 속박되어 권익이 보장되지 못하고 억압당하여 억울함에 한이 맺혔으니, 최제우는 이러한 세상을 구하고자 먼저 보국안민(輔國安民)과 포덕천하(布德天下)의 기치를 내걸고 구국제민(救國濟民)을 표방하는 한편, 동학(東學)을 창시하여 외세에 대한 저항 의식을 고취시키고 백성을 구하기 위한 정신을 배양했다. 한민족의 전통적인 제천신앙(祭天信仰)의 핵심인 한울님(하느님)을 자기 자신 속에서 찾아 자신과 세계를 구하자는 신앙이며, 기존의 낡은 세계와 질서를 근본적으로부터 부하고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개벽사상(開闢思想)이었다. 이러한 사상이 농민, 천민, 유생에 이르는 광범위한 계층에 공포하며 교세가 확장하여 나갔다. 차별이 없는 평등한 세상을 선포한 후천개벽설(后天開闢說)은 억압받던 농민, 천민들에게 열광적인 희망을 주었던 반면, 상류층의 양반 계급과 조정에서는 위협의 대상이었다. 그 와중에 동학은 1861년 6월부터 포교 활동을 시작하여 삽시간에 수많은 신도들을 확보했다. 동학 세력의 교세가 확장되어 나가자 당시 혼란한 시국에 빠져 있던 조정에서는 위협을 느끼고 박해를 시작하였다. 그러자 최제우는 1862년 전라도 남원 보국사(輔國寺)에 들어가 도수사(道修詞), 권학가(勸學歌), 안심가(安心歌) 등을 지어 서한(書翰) 형식으로 신도들에게 보내어 수도법을 가르치고 신앙심을 고취시켰다. 최제우가 1862년 3월에 경주로 돌아오게 됨을 계기로 하여 경주를 중심으로 포교 활동이 시작되어 다시 교세가 확장되어 나가기 시작하였다. 1862년 9월 최제우가 경주 관아에 의해 체포되어 투옥되었다가 석방되면서 그 포교 활동이 순탄치 않게 되자 교통(敎統)을 이을 후계자 선정과 교의를 정립하기 위한 경전(經典) 편술(編述)과 동학의 기본 조직인 접주제(接主制)를 실시하고 각 지방에 접소(接所)를 두어 관장하게 하는 등 대폭 활동의 방향을 정비하기에 이르렀다. 이 때 14개 접소에 접소마다 교인이 3,000명에 달했다. 그 해 7월 제자 최시형(崔時亨)을 북접(北接) 대도주(大道主)로 삼고 8월 14일 교통(敎統)을 계승시켜 교주(敎主)로 삼았다. 그 해 최제우는 지방 접소를 순회하다가 1863년 12월 9일에 경주 용담정에서 체포되었다. 그리고 갑자년(甲子年, 1864년) 3월 10일에 좌도난정(左道亂正)의 죄목으로 대구(大邱) 장대(將臺)에서 처형이 되었다. 이 때 최제우의 나이 41세였다. 최제우는 사형 당시, 북향사배(北向四拜)를 하고 유언하길, 「더디도다 더디도다. 무극대운(无極大運) 팔년이 더디도다. 전 사십은 나려니와 후 사십은 누구 련고」라고 하였다. 최제우의 유언대로 8년 후인 신미년(辛未年, 1871년)에 상제님께서 세상에 강세(降世)하셨다. 
상제께서는 1800년(庚申)에 서양 대법국 천계탑에 내려오셔서 천하를 삼십(三十)년 대순하시다가, 1830년(庚寅)에 금산사 미륵금불에 이르러 삼십(三十)년을 지내시다가 1860(庚申)년에 최제우에게 제세대도(濟世大道)를 계시하고, 12년 후인 1871(辛未)년에 강세(降世)하시었다. 상제께서 강세하시기까지 도합 72년은 72둔의 수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천계탑에서 30년과 금산사에서 30년 도합 60년은 김일부 선생이 주장한 무극체위도수(無極體位度數) 이수육십일(而數六十一)과도 일치하고 있다. 그리고 최제우에게 제세대도를 내리신 5년과 7년 후인 12년 후에 탄강하신 것은 낙서의 중앙 5인 토(土) 곤(坤)의 도수(度數)를 뜻하고, 12년은 금화정위를 하여 상극에서 상생으로 변하여 완성되는 수(數)가 12인 도(道)를 따른 것이다. 상제께서 9년간 천지공사를 하시고 39세에 화천하신 수(數)도 27년 허도수와 12년 완성의 수(數)에 기인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최제우 선생이 구미산(龜尾山) 용담정(龍潭停)에서 처음으로 하느님의 천명을 받았다는 것이다. 구미(龜尾)는 거북이의 꼬리이니 선천시대의 끝자락을 의미한다. 끝이 곧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 되므로, 선천에서 후천으로 넘어가는 시운(時運)에 일어난 인류사에 가장 큰 사건이었다. 하늘인 건(乾)의 짝(配)은 땅인 곤(坤)이 된다. 땅의 이치인 곤(坤)인 토(土) 오(五)를 도수(度數)로 삼아서, 최수운 선생을 5년간 먼저 세상에 내놓고 난 뒤 상제께서 탄강하신 것도 후천의 지천태(地天泰)의 섭리를 이룩하시려는 일환으로 상제께서 공사를 보신 것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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